선시17(바람소리)

2916, 비 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사연

시인 미소향기 2013. 8. 31. 20:10

      2916, 비 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사연 / 남 백 최 유라, 조 영남 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는 올해 60세가 되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남들처럼 아내의 사랑을 먹으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경상도 토박이랍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어려서부터 흘러간 옛 노래를 벗 삼아 일을 배우며 보낸 소년기와 청년기를 직장에서 보낸 관계로 흘러간 가요라는 가요는 거의 모르는 것 없이 답습하였고 부르다시피 하였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부르는 옛 노래의 진가는 노래방이 생겨나고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주어질수록 마치 스스로가 가수가 된 듯이 그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더랍니다. 그러한 저에게도 꼭 한 가지 노래만은 목이 메어서 부르지를 못하는 노래가 있답니다. 대중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 이란 노래입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때엔 우엉새도 울어었다네 나-도 울었-소.. ” 비 내리는 고모령의 첫 가사. 여기 바로 이 정도 마디를 읊조리다보면 절로 눈물이 흐르고 큰 서러움에 목이 메인답니다. 어려서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행복을 가꾸며 살아가시던 부모님께선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도의 작은 어촌에서 전북 김제의 금산사 인근으로 이사를 했었지요. 그곳을 택한 이유랄까.. 뒤에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참전 하셨던 아버님께서 북진을 하는 중에 들린 김제의 작은 암자에서 어느 스님을 만나 금강경과 마하반야심경을 얻어 수지 독송하게 되었더랍니다. 무수한 군인들이 죽어가는 전장 터에서도 아버님께선 불투명한 내일과 전사하신 분들을 위하여 마음으로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많이도 외웠더랍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사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시는 말씀을 전해 들었답니다. 물론 그곳에서 스님은 아니었지만 신심으로 불도를 구하셨답니다. 그렇게 두 분의 정성으로 행복을 가꾸어 가시다가 어머님께서 먼저 세상을 뜨시게 되었고, 그 후 5개월 뒤에 아버님도 귀천하셨답니다. 그곳 금산사 뒤편 양지바른 절 공동선산에 어머님을 편안히 모셔 드리고 내려오면서 마음으로 흥얼대며 부른 그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이랍니다... 비 내리는 고모령- 현인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 이던가 물방아 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 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다른 노래는 잘도 부르는데 목이 매여서 울음 울지 않고는 끝까지 부르지 못하는 노래 내 어머니를 천상에 모셔두고 터벅터벅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부르던 바로 그 노래...비 내리는 고모령을 신청하여 봅니다. 서러운 마음 안으로 재우며 따라 부르면서 불효를 씻는 참회의 마음으로 부모님 전에 용서를 청하며.. 뜨거운 눈물로 다하지 못한 회한을 씻어 보려합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함께 하여 주는 아내와 자녀들 건강하기를 빌며 최유라 조영남 모든 스텝들의 가내평안하심과 세계 곳곳에서 청취하여 주시는 이들의 건강과 평화로움을 소원하오며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올립니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