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8, 가을 설거지 / 미소향기 지행
간밤의 꿈 가만히 들춰내며
빙긋이 웃고 마는 촌로의 적삼 사이로
한 뼘 남은 가을 햇살이
살며시 잰 걸음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있다.
사람이 늙으면
괜스레 그리움만 깊어지는가.
붉게 적시는 눈시울이
오늘따라 따가워지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를 착잡함에 펑펑 울어버리고 싶다.
성성한 백발,
그 삶의 그 흔적 쓸어 담으며
돌아보는 가을의 골목어귀에는
들녘의 풍성함이 보란 듯이 넘실대련만
들고 있는 내 보따리는 이미 색이 바래었구나.
붉은 바람이
부채질로 가을 산을 물들이니
인생의 가을,
삶의 굴곡도 거의 넘어선 듯 여겨지고
저 아래 계곡물은 꽤 멀리도 흘렀을 듯하구나.
내 안으로 맑은 바람 지나는데
가슴엔 왜 이리도
큰 구멍이 휑하니 뚫렸을까.
찬 서리 내리기 전에 서둘러 밀쳐 둔
내 마음의 가을 설거지를 깔끔히 마쳐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