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향기 내가 지은 업보야 어찌 다른 이의 생으로 이어질까. 전생에 지은 죄업 하나로도 이생의 아픔을 동반함이라. 지금 살아가는 중에 힘이 들거들랑 전생에 쌓아놓은 복덕이 적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부자로 살아가는 이는 그것이 지금 현제 열심히 살아온 결과로 받아들이지만 지난 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과보의 결과로 지금의 부유함을 사는 것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행을 베풀며 나누면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현제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금 많은 복을 지어서 다음생과 또 미래세의 복덕을 저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행으로 복덕을 쌓는다면 종래는 부처의 지위에 오르지 않겠는가. 업장소멸이라. 내가 지은 것이니 내가 소멸해야 함은 당연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부처나 스님이나 또는 수승한 스승에게 매달려 자신의 죄업을 소멸시켜 달라고 애원을 한다. 분주히 구걸을 하는 걼;ᅟᅵᆨ자와 같이... 그러나 스스로 해원하지 않고는 어느 누가 감히 건져주기를 바란단 말인가. 하지만 그대는 아는가. 나의 어둠은 내 스스로 밝아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어둠이 밝음으로 바뀌지는 않는 것이다. 어두우면 촛불을 켜야 하는 것과 같이 나의 신심으로 마음을 밝히는 불을 켜야 하는 것이다. 즉 나의 신명을 밝게 변화를 시켜야 하는 것이다. 정업 ; 정해진 나의 업보 가벼운 업은 기도로서도 충분히 해원 할 수 있는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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